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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실패 후 빈털털이에서 시작한 한국 생활 #4 큰 아이가 돌이 되기 전까지 나는 매일 6시 반에 출근 밤 9~10시 정도에 퇴근하는 삶을 살았다. 이후 집에 돌아오면 독박 육아에 지친 아내와 캄캄한 거실에서 잠든 아이를 옆에 둔 채 음소거 한 채 TV를 켜놓고 늦은 저녁식사로 서로를 다독이며 보냈다. 피곤했지만 조금 더 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못했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읽은 것과 다르게 부업 또는 투자로 부자의 길로 넘어가기엔 당장이 너무 피곤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소득이 높지 않아도 전보다 나은 삶에 안주하며 살았던 것 같다. 주중 고된노동의 보상을 술 한잔과 맛있는 음식, 친구들과의 모임으로 주말을 보내곤 했다. 큰 아이가 돌이었을 때 우리는 운이 좋게도 34평 아파트로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35만원) 들어갈 수 있.. 2024. 4. 15.
이민실패 후 빈털털이에서 시작된 한국생활#3 기존에 있던 직장에서 나오는 날 첫째아이의 임신 소식을 알게되었다. 결혼 생활 5년차였던 우리에겐 큰 선물이었다. 모든 것이 잘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당시 나는 사람들이 안나오거나 가기 싫은 구역까지 나는 자처해서 배송갔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남들이 안하는 곳들을 하다보니 짧은 시간에 지리를 다 익히게 되었고 구인이 안될 때는 어김없이 그 구역들은 내가 대타로 차지해 추가로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월 400~450만원 정도의 소득이 되었다.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월소득이 두 배 정도 된 것이다. 선택이 중요하단걸 몸으로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임신 후 3~4개월이 지나고 우리는 소형 평수의 동네 아파트로 이사했다. 일은 적응되어갔고 조금씩 저축도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2024. 4. 8.
이민실패 후 빈털터리에서 시작한 한국생활 #2 이전 사무실 근처에 일부러 계약한 집과 더 멀어졌기에 출근 시간을 더 앞당겨야 했고 퇴근시간은 더 늦어졌다. 결국 평균 근무시간이 늘어났지만 월급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팀장이라는 직책이 나에게 책임감을 부여해 힘든 순간들이 오면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나는 팀장이니까.. 남들보다 조금 더 일하고 노력하면 좋은 날이 오겠지.."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5시가 되면 일어나 트럭을 몰고 출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밤 9시였다. 집에 돌아오면 맥주한 캔 마시며 아내와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잠에 드는 것이 루틴이 되버렸다. 처음 읽었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책 내용들은 나에게 충격은 주었지만 내 삶을 바꾸는데 전혀 적용하지 못했다. 난 그런 일상에 점점 적응해 갈 뿐이었다. 어느 날,.. 2024. 4. 8.
이민실패 후 빈털털이로 시작한 한국 생활#1 이민 실패 후 다시 돌아온 한국 2017년 3월, 5년간의 이민생활을 정리하고 무일푼으로 돌아왔다. 500만원을 들고 아내와 5년을 인생공부하는데 썼으니 싸게 먹히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5년간의 해외생활로 극단적으로 아껴보기도, 극단적으로 지출해보기도 하며 깨달은 것들은 다음에 적어보기로 한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그 때 당시에는)32살이었다. 당시 모아놓은 돈도 직업도 없던 내가 하루는 친구들과 술을 한잔하고 길을 걸으며 나눴던 대화에서 충격을 받았다. 나와 비슷한 수준인 줄만 알았던 친구가 집을 샀다는 말을 듣고서다. 당시 평생 열심히 일해오신 부모님들도 구축 빌라에 전세로 사시는 모습만 보고 자랐던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친구에게 일자리 제안을 받다. 얼마 후 직장을 알아보다 해외에서 같.. 2024.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