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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파의 성장기록

이민실패 후 빈털터리에서 시작한 한국생활 #2

by 유스파 2024. 4. 8.

 

이전 사무실 근처에 일부러 계약한 집과 더 멀어졌기에 출근 시간을 더 앞당겨야 했고

퇴근시간은 더 늦어졌다.

결국 평균 근무시간이 늘어났지만 월급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팀장이라는 직책이 나에게 책임감을 부여해

힘든 순간들이 오면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나는 팀장이니까.. 남들보다 조금 더 일하고 노력하면 좋은 날이 오겠지.."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5시가 되면 일어나 트럭을 몰고 출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밤 9시였다.

집에 돌아오면 맥주한 캔 마시며 아내와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잠에 드는 것이 루틴이 되버렸다.

처음 읽었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책 내용들은 나에게 충격은 주었지만 

내 삶을 바꾸는데 전혀 적용하지 못했다. 난 그런 일상에 점점 적응해 갈 뿐이었다.

 

어느 날, 낮에 배송을 마치고 말단 직원형에게 전화가 왔다. 밖에서 점심을 같이 먹자고.

사무실 들어가기 전 우리는 만나서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늘 급여에 의심을 품었던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결국 서로의 급여까지 공개하게 된 것이다.

팀장인 나보다 더 늦게 들어온 막내 직원형의 월급은 무려 100만원이나 높았다..

정말 큰 충격이었다.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

모두가 한패가 되어 날 속였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그 날 이후 직원 형들의 급여를 묻고 다니기 시작했다.

항상 붙어다니며 거래처를 많이 갖고 있던 형들은 무려 나보다 300만원씩이나 높았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나는 더 늦게 퇴근하는데....

희망을 갖고 일하던 직장은 나에게 단 일 분도 더는 있고 싶지 않는 지옥이 되었다.

 

그 때부터 새로운 일을 몰래 찾게 되었다. 

다른 직업을 구할 시간이 없기에 배송을 다니며 만나는 택배기사분들에게 음료수를 사다주며

미안하지만 5분만 시간을 내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들의 일상과 급여을 묻기 시작했다.

말하기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부탁했다.

본인의 급여를 공개하기 꺼리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 중 가장 적게 버는 사람의 급여라도 물었다.

모든 대답이 충격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많았고 못버는 사람이 나의 노동시간의 반만 일하는데도 

나보다 100만원 이상은 더 벌었다.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알게되었다.

나는 그 날로 저녁부터 우리 집에 배송오는 택배기사분들의 연락처를 저장해놓고 연락을 돌렸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자리가 있는지, 일하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정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화물운송 종사자 자격증 먼저 따고 트럭만 있다면 일 할 수 있다는 말에

바로 자격증 준비를 해서 따놓고 중고로 가장 싼 트럭을 알아보았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그렇게 오래된 400만원짜리 중고 트럭을 사고 일할 준비가 되었을 무렵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먼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사장에게 나오기 직전에 통보하고 나왔다.

대우해주지 않는 곳에 예의를 차리고 싶지 않았다. 그럴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그 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구역으로 배정받고 CJ대한통운 택배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첫달만에 기존에 받던 월급보다 150만원 이상은 더 벌 수 있게 되었다.

일은 힘들고 늦게 끝났지만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점,

동네라서 아내가 도와줄 수있다는 장점이 있었기에 삶의 만족도는 크게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