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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파의 성장기록

이민실패 후 빈털털이로 시작한 한국 생활#1

by 유스파 2024. 4. 8.

무일푼

 

  • 이민 실패 후 다시 돌아온 한국

2017년 3월, 5년간의 이민생활을 정리하고 무일푼으로 돌아왔다.

500만원을 들고 아내와 5년을 인생공부하는데 썼으니 싸게 먹히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5년간의 해외생활로 극단적으로 아껴보기도,

극단적으로 지출해보기도 하며 깨달은 것들은 다음에 적어보기로 한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그 때 당시에는)32살이었다.

당시 모아놓은 돈도 직업도 없던 내가 하루는 친구들과 술을 한잔하고

길을 걸으며 나눴던 대화에서 충격을 받았다.

 

나와 비슷한 수준인 줄만 알았던 친구가 집을 샀다는 말을 듣고서다.

당시 평생 열심히 일해오신 부모님들도 구축 빌라에 전세로 사시는 모습만

보고 자랐던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 친구에게 일자리 제안을 받다.

얼마 후 직장을 알아보다 해외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의

부모님께서 택배사무실을 하나 차려주셨으니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나도 가정을 꾸렸으니 놀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가본 적 조차 없는 시흥이라는 곳에서

일단 일이라도 시작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간단히 짐을 꾸려 혼자 떠났다.

아내는 처갓집에, 나는 시흥에. 그렇게 우리는 자발적 주말부부가 되었다.

 

처음 해보는 택배일 일은 고되고 환경은 열악했다.

생활할 곳을 구할 수 있는 형편이 전혀 아니었기에 나는사무실(컨테이너)에서

숙식하며 지냈고 씻는 것은 가장 가까운 근처(차로 20분 거리)헬스장을 이용했다.

업무 시작은 6시, 마치면 저녁 8시 때때로 밤 12시까지도 일해야했다.

늦은 날은 헬스장으로 씻으러 가지도 못하고 잠들기도 했다.

그렇게 한두 달쯤 일했을 때였나..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들로 한참을 뒤척이다 사무실에 꽂혀있던 책이 떠올라 읽기 시작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였다.

 

처음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계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월급이 200만원이었는데 3~4개월이 지나도 단 한 푼도 모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월급을 받기가 무섭게 충동적 소비를 하며 지냈다. 

미래에 대한 불투명에 고민하면서도 전혀 준비를 하지않는 언행불일치의 삶을 살았다.

몇 달이 지나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같은 환경에 놓여있는게 

안쓰러웠는지 어머니께서 거금 500만원을 지원해주시며

"계속 아내와 주말부부로 살 수 없으니 월세라도 알아보라"며 보증금을 보태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돈은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거래했던 보험사에서 대출한 돈이었다.)

우리는 이 돈으로 작은 오피스텔 (보증금 500 /월세 45만원)을 구했고

한국에 들어와 처음으로 둘만의 집이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뻤다.  

 

  • 현실과 마주하다

새로운 동네, 매월 들어오는 200만원, 작지만 소중한 보금자리(월세지만),

타국에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한국생활.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일상의 설레임을 선물해줬다.

매일 먹고싶은 음식과 술, 여행 등 억눌렸던 소비욕구를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

계산도 하지 않고 지출만 하는 삶을 지속했다. 매번 월급날이 되면 아내와 나는 싸우는 날이었다.

사장님(친구 아버지)께서 월급을 넣어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이틀 더 기다려보자. 아내는 빨리 재촉해 받아내야 한다..

마침 일이 점점 많아지고 매출도 늘었기 때문에 고민 끝에 사장님께 월급을 50만원 올려달라고 제안했다.

생각해보겠으니 돌아가라는 말 뿐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했던 당시 택배영업소(친구와 하는)의

하루 매출은 15만원 수준에서 200만원 이상까지(10배이상) 끌어올렸지만

그 수익은 모두 사장에게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 땐 너무 억울했다.

그정도로 자본주의에 대해 무지했다.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갑자기 키우고 있던 영업소를 팔겠다는 통보를 해온 것이다.

무언가 잘 못 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키워놓은 사업체와

거래처들은 바로 다음날부터 다른 사람에게 인수인계 해야했고,

안양에 새로운 곳을 열었으니 이 곳에서 일하라는 통보만 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없었다. 사무실 근처에 잡은 집을 옮길 수도 없는 현실,

월급을 올리기엔 능력이 없었고 급여 없인 아무런 소득이 없던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안양으로 출퇴근을 선택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