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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파의 성장기록

이민실패 후 빈털털이에서 시작된 한국생활#3

by 유스파 2024. 4. 8.

 

기존에 있던 직장에서 나오는 날 첫째아이의 임신 소식을 알게되었다.

결혼 생활 5년차였던 우리에겐 큰 선물이었다.

모든 것이 잘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당시 나는 사람들이 안나오거나 가기 싫은 구역까지 나는 자처해서 배송갔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남들이 안하는 곳들을 하다보니 짧은 시간에 지리를 다 익히게 되었고 구인이 안될 때는

어김없이 그 구역들은 내가 대타로 차지해 추가로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월 400~450만원 정도의 소득이 되었다.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월소득이 두 배 정도 된 것이다.

선택이 중요하단걸 몸으로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임신 후 3~4개월이 지나고 우리는 소형 평수의 동네 아파트로 이사했다.

일은 적응되어갔고 조금씩 저축도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모은 돈으로 320만원짜리 오랜된 중고 승용차를 하나 샀다.

임신한 아내를 태우고 트럭으로 다니는게 불편하기도 했고

아이가 태어나면 여러가지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에 아내가 운전 할 승용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택배 일을 시작하고 6개월쯤 된 무렵 나는 개인사업자를 냈다.

지금은 대부분 사업자를 내고 택배일을 하지만 당시에는 사업자를 낸 택배기사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소장에게 부가세 10%를 떼고 월급을 이체받는 것보다 부가세를 받고

경비 처리를 한 후 내는 세금이 더 적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유튜브만 봐도 부가세신고 방법이 아주 잘 나와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기존 방법을 더 고수했다.

 

나는 작은 돈이지만 조금씩 나에게 유리한 상황들은 만들면서 돈을 더 모을 수 있었다.

빈털털이에서 1년여만에 중고 트럭과 승용차, 우리 돈으로 산 가전,가구들이 있는 월세 소형아파트,

그리고 곧 태어날 2세. 아이와 함께 셋이 살 집을 꾸미고 준비하는 모든 순간들이 꿈만 같았다. 

지난 순간들이 모두 보상 받는 것만 같았다. 아내와 나는 "한국에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했다.

하지만 타국에서 경험했던 몇 번의 소득절벽의 순간들, 당장 다음달 낼 월세도 없어 고민하던 시절들,

하루 단돈 2,000원으로 버텨오던 날들을 돌이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내와 아이를 지켜야하는데...

 

그 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다시 그 책을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