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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파의 성장기록

이민실패 후 빈털털이에서 시작한 한국 생활 #4

by 유스파 2024. 4. 15.

 

큰 아이가 돌이 되기 전까지 나는 매일 6시 반에 출근

밤 9~10시 정도에 퇴근하는 삶을 살았다.

이후 집에 돌아오면 독박 육아에 지친 아내와

캄캄한 거실에서 잠든 아이를 옆에 둔 채 음소거 한 채 TV를 켜놓고

늦은 저녁식사로 서로를 다독이며 보냈다.

피곤했지만 조금 더 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못했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읽은 것과 다르게 부업 또는

투자로 부자의 길로 넘어가기엔 당장이 너무 피곤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소득이 높지 않아도 전보다 나은 삶에 안주하며 살았던 것 같다.

주중 고된노동의 보상을 술 한잔과 맛있는 음식, 친구들과의 모임으로 주말을 보내곤 했다.

 

큰 아이가 돌이었을 때 우리는 운이 좋게도

34평 아파트로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35만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장 내일 미국에 들어가야하는 마음 급한 임대인을 소개시켜준 부동산 사장님 덕분에

급하게 계약했지만 말도 안되는 금액에 큰 집에 살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아내는 처음으로 큰 평수의 집에 살게 되었다.

내 집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자가처럼 페인트 칠, 입주 대청소까지 하며 께끗하게 꾸며놓고 살았다.

동시에 집이 넓어지니 지출은 더 커졌다. 

큰 집에 맞는 가구, 가전 등을 사들이면서 당시 우리의 저축액은 거의 없었다.

 

  • 팀장과의 트러블

생활은 안정화 되었지만 일적으로 큰 사건이 있었다.

택배 영업소 팀장과 불화가 생긴 것이다.

매번 사람이 비면 힘들어도 스스로 투입되어 일했지만

팀장에게 한 번 대들었다는 이유로 나는 말 그대로 "팽" 당했다.

팀장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즉 짤릴 수 있는 위험이 커진다는 의미였다.

이전 아무리 친한 사람들도 팽 당하면

저층 아파트나 빌라들이 많은 지역(계단을 오르며 배송해야 하는 구역)으로

배송구역을 강제로 옮겨버리거나

구역의 절반 정도를 잘라내 버린 사건

(월소득이 줄어들어 못 버티고 다른 일을 구하러 나감)들이 다반사였다.

옆에서 오래도록 지켜봐왔기에 나 역시 이런 수순을 모를리 없었다.

 

  • 노조결성

그래서 나는그동안 팀장의 독재에 피해를 본 사람들과 일자리를 잃을까

하루하루 불안한 동료들을 모아 노조를 결성했다.

정치적인 색을 떠나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이것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팀장은 나와 동료들의 구역을 잘라버리는 사건이 터졌고

우리 모두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는 통보로 인해

우리는 팀장의 독단적인 행동을 막을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독단적 만행으로 팀을 이끌던 팀장의 직급을 해제시키고,

출근시간을 늦춰 분류작업시간을 없애고,

수수료 또한 올리는 성과를 이뤄냈다.

내가 속한 영업소의 모든 직원들은

이 사건으로 하루 근무시간이 3~4시간이 줄고 소득은 3~40만원이 오를 수 있었다.

위기란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란 말이 있듯이 나에게 이 큰 위험이 큰 기회로 바뀐 사건이었다.